한 사람의 신

한 사람의 신

2025. 7. 29. 05:18


“그렇게 보면 뭐가 제대로 보이겠어?”
핀잔은 등 뒤에서부터 날아왔다. 백로처럼 목을 꺾으며 시체를 거꾸로 보려던 나카에는 고개를 바로 들고 현장을 돌아봤다. 현장 안쪽에 들어와 있는 요원은 총 셋. 그중 하나는 폴리스 라인 근처에서 민원을 상대하고 있었다. “밤은 춥다구.” 민원인은 막무가내로 성토했다. “불알이 두 쪽 다 떨어져 나갈 것 같다니까. 응?” 그는 머리가 덥수룩하게 길고 꾀죄죄한 몰골로, 아무래도 거리를 떠돌면서 이 일대를 일종의 거주 구역 삼은 모양이었다. 변변찮은 외투도 못 걸친 차림이 어지간히 추워 보이기는 했다. 닳아빠진 집업 위로 고작 낡은 묵주 하나가 흔들거렸다. 안으로 밀고 들어오지는 못하면서도 순순히 물러날 생각 역시 없어 보였고, 막내는 그를 단호히 밀어내지 못한 채 쩔쩔매고 있었다.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니까. 막내가 홍역을 단단히 치르든 말든 팀 치프는 구석에 간이의자를 놓고 걸터앉아서 상황을 방관하고 있었다. 그는 대체로 방임주의에다 현장 교육을 중시했고 성격은 다소 거칠었다. 그렇다 보니 옆 팀 치프에 비해 인기는 상당히 없었지만 성과는 비등비등했다. “스트레칭 좀 했습니다.” 오늘따라 더욱 불퉁한 태도를 보이는 상관에게 뻗대는 대신 간결히 대답하고, 나카에는 바로 방향을 틀었다. “묵주!” “네?” 막내가 뒤를 돌아보며 갑작스런 소리에 반문했다. 그 사이에 꾀죄죄한 남자는 칫 하고 혀를 차며 재빨리 몸을 빼내려고 했다. 그러나 그보다도 막내의 반응이 빨랐다. 그는 잠깐 낭패한 얼굴을 하고는 바로 다리를 걸어 남자를 넘어트리고 두 팔을 빠르게 등 뒤로 꺾으며 그 위에 올라탔다. 악 소리가 났다. 등 위에 무거운 덩치를 올린 채 발버둥치는 남자에게로 빠르게 걸어간 나카에는 곧 그 목에서 묵주를 낚아채 빼냈다.
“이봐, 기자 양반. 이런 장난감을 갖고 오면 안 되지.”
“당신들 이거 과잉 진압이야! 언론에 제보할 거라고, 진짜야!”
“네, 네.”
그녀의 사나운 손이 묵주의 십자가를 앞뒤로 뒤집으며 살폈다. 십자고상의 윗부분, 구원자의 머리 위에는 푯말 대신 외눈이 새겨져 있었다. 외눈의 눈동자 안쪽은 좁고 어두웠지만 초소형 렌즈가 삽입되어 한순간 반짝였다. 그제야 위장용 카메라라는 사실을 알아챈 막내도 놀람과 감탄이 섞인 얼굴을 하고 이쪽을 바라봤다. 나카에가 그 서툰 얼굴에 대고 픽 웃어주려는 때였다. “좋아!” 치프가 찌뿌둥한 몸을 일으키며 근처로 걸어왔다. 그는 아직 기자의 몸에 올라타 있는 막내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아래쪽에 지원 나오면 이 자식 인계해. 추워 보이는데 모포도 둘러주고. 불쌍하게도 엄청 떠네. 그럼 더 볼 것도 없겠다 해산. 퇴근들 하지.” 속사포처럼 쏟아져나온 결론에 나카에가 눈을 불만스럽게 치떴다. “현장 청취 아직 안 끝난 걸로 압니다만.” “날씨 봐라. 이런 날엔 사람도 안 다니고 뭐 안 나와. 예보 봤어?” 떠나기 전 현장을 둘러보는 치프가 마지막으로 얼어붙은 시체에 시선을 던지며 미소지었다. 신원 미상의 그는 최초 신고가 들어온 이래 거꾸로 매달린 채 혹한에 방치되어 있었다.

“폭설이랜다.”
두 시간 만에 적설량은 10cm를 넘어섰다. 기록적이었다.

연말이 다가와 부쩍 추워진 거리에는 안 그래도 사람이 얼마 없었다. 시민들은 이변을 모르고 쥐 죽은 듯 잠들었다가 날이 밝으면 자기들이 갑작스레 고립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몇 사람만이 눈발을 헤치고 길을 뚫으며 걸어가고 있었다. 무릎까지 발이 푹푹 박혔다. 눈 닿는 곳마다 온통 하얗다. 런던 한복판에 펼쳐진 고립무원의 설원에서, 티모시는 문득 고개를 꺾어 흐릿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입김을 희게 쏟았다.


“내가 아직 싫었으면 말을 하지…….”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뻗어나가던 입김이 축축 늘어지는 꼴을 보면서 그는 한 번 더 덧붙였다. “저녁도 안 주고 부려 먹네.” “시끄러워.” 그제야 돌아온 말소리는 매섭다. 머쓱할수록 사납게 구는 그녀의 천성이 새삼 우스웠다. 짤막한 웃음을 흘리는 입매로 옅은 눈송이 하나 흩어져 들어와 빠르게 녹아내렸다.
그가 가로등 아래서 한 대 피우는 동안 나카에는 빠르게 저녁을 사러 다녀왔다. 이런 때 장사를 할 만한 가게는 뻔했고, 돌아오는 여자의 손목에는 딤섬 담긴 봉투가 걸려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났다. “냄새 때문에 걸리게 생겼네.” 불평은 여자의 입에서 떨어졌다. 티모시는 다시 한 차례 소리내어 웃었다.


기상이변으로 인한 단축근무 때문으로 본청은 평소보다는 한산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갖가지 부서가 난립하는 마당에 소란이 일기도 부지기수였으므로, 두 사람은 외진 통로를 골라 걸었다. 보안을 파훼하자고 두른 주문만도 몸을 겹겹이 에워싸 대기 중 마법의 밀도에 숨이 약간 갑갑할 정도였다. 추적방지술 대개는 학창 시절 배운 주문의 변형이다. 전쟁을 치르면서 주문을 거듭 고쳐나갔다. 누군가 세세히 일러주지 않아도 나카에는 주문의 어디를 어떻게 고쳐나가야 하는지 저 알아서 빠르게 깨달았다. 사격 훈련을 받을 때 자연히 총기를 어떻게 고쳐잡아야 하는지 감각했던 것처럼. 훈련장의 일등은 떼어 놓은 당상이었고…… 그녀는 총구를 겨누듯 지팡이의 끝을 티모시에게 향했다. 목표는 냉담하게 투항했다. 마법이 그의 목울대 앞을 빠르게 그었을 때, 그는 더없이 순순한 태도로 턱을 약간 들어 보이기도 했다. “왜?” 나카에의 시선이 길어지자 남자가 뜻 없이 물었다. “아니.” 여자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물었다 놓으며 돌아선다. 열 감지를 피해 가며 두 사람은 마침내 인적 드문 지하의 영안실로 내려섰다. 안치실로 들어서자 삽시간에 건물 내부에서 바깥으로 도로 내팽겨쳐진 듯 끔찍이도 추웠다. 나카에는 무심코 몸을 떨고는 주문 몇 개를 거두고 대신 보온 마법을 둘렀다. 티모시는 봉투를 건네받아 그 안을 잠깐 뒤적거리다가 입맛을 잃은 얼굴로 주변만 둘러보았다. 식은 딤섬은 그렇게 구석에 놓였다. “그래서 내가 만나야 할 사람은 누구야?” 그가 물었을 때 여자는 이미 격실의 명패를 쭉 훑고 있었다. 한 곳에 다다라 그녀는 마침내 자기가 늦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아직 부검실로 송치되지 않은 시신이 거기 있었다. 명패에는 이름 대신 사건 번호가 걸려 있었다.

형사는 전직 군의관을 쓸데없이 방해하지 않기로 했다. 남자가 마침내 검시대에서 몸을 일으키기로 할 때는, 천장의 옅은 미백색 조명이 그의 정수리 위에서 동그랗게 비추어 내리고 있었다. 그는 기도를 마친 신자처럼 몸을 거뒀다. “너무 평범해.” 건조한 성음보다도 서늘한 안색이 무감동하게 시신 위를 훑어내렸다. “발견했을 땐 거꾸로 매달려 있었지? 사지 말단과 하지가 푸른 건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서 그래. 혈관이 수축해서 경과가 더 빨랐군. 상체에 울혈이 심해. 두경부 내압 때문에 눈이 거의 밀려 나왔고.” “사인은?” “저산소성 뇌 손상. 아슬아슬했지. 더 버텼으면 동사했을 거야.” 티모시가 장갑을 벗으면서 덧붙였다. “더 자세한 건 개복을 해봐야 알겠군.” 나카에가 반 바퀴를 돌아서 검시대의 가장자리를 짚었다. 남자의 손과 가까웠다. “그런데 왜 관심을 둔 거야. 타살이라고 생각해?” 남자가 손날이 마주 붙는 것을 피하지 않고 물었다. “글쎄. 최근에 유사한 케이스가 자주 발견되거든.” “흐음.” “머리 좋은 녀석이 자살을 꾸며내고 있거나 집단 자살을 조장한다는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 중이야.” “거꾸로 매달린 남자는 순교나 정화의 의식을 상징하지.” 여자의 손이 그의 손 위로 겹쳐졌다. 남자는 겹쳐 쥔 사나운 손등을 내려다보며 계속 말했다. “때로 그 상징의 대상이 이교가 되기도 하고. 어느 쪽이건, 이 나라에서 그렇게 드물지 않아.” “뭐가. 집단 광기?” 여자가 입을 벌려 낮게 묻자 하얀 입김이 진눈처럼 흩날렸다. 지하의 밀폐된 안치소는 어느새 공기가 약간 부족했다. 티모시는 미약한 어지러움을 느끼며 고쳐 말했다.


“맹신.”
“입 벌려 봐.”
순간 헷갈렸다. 그는 무언가 물을 것처럼 입을 뗐다가, 곧 여자가 시체를 곁눈질하는 것을 알아챘다. 그는 붙들렸던 손을 빼서 다시 검시용 장갑을 꼈다. 나카에의 손은 잠시 허공에 머물다가 느리게 내려앉았다. 습기가 밴 손은 라텍스 장갑에 어렵게 껴들어갔지만, 티모시의 손은 능숙했다. 남자는 곧 눈 감은 시신의 아랫입술을 엄지로 가볍게 쓸어 입을 열었다. 하악은 뻣뻣하게 벌어졌다. “자국이 남았네.” 그는 언제 다른 데 관심을 두었냐는 듯 금방 집중했다. “데이고 눌렸어. 혓바늘도 입천장도 상태가 심해서 뭐였는지 원래 모양을 알아보기는 힘들 수 있겠어.” 그리고 곧장 고쳤다. “아니, 명확한데. 십자가군.” 티모시가 눈을 떼고 나카에의 눈을 마주 봤다. “불에 달군 쇠십자가야.” “지금 물품보관소에 잠들어 있어.” “그럼 그 쇠십자가를 어디서 찍어내는 건지 알아내면 되는 거잖아?” 묻는 남자의 시선이 물끄러미 길어졌다. 

 

“나한테 왜 보여줬어?”
“알고 싶었나 본데.”
“뭐가.”
“맹신이 어떻게 태어나는 건지.”
“그리고.”
“네 맹신은 어떻게 생겨먹은 건지.”
“그래서 순교하라고?”
“지랄해달라며.”
이쯤 여자가 웃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덧붙였다. 안 되나.
“글쎄. 네가 내 죄목도 하얗게 덮어주고. 좆같이 살지 말라고 거둬서 먹이고 재우고. 여러 모로 구원 베풀었다고 한다면 그건 그거대로 맞는데.”
“존나게 많이도 베풀었네, 새삼…….”
“네가 내 종교는 아니지.”
“그렇겠지, 등신아.”
여자는 남자의 손목을 붙들고 그의 장갑을 벗겨냈다. 티모시의 손바닥에 고인 그녀의 손가락은 사납고 싸늘하다. 거센 눈 폭풍 같다. “난 그냥 네가 데였으면 할 뿐이야.” 너무 차가워도 살갗에 화상을 입힌다나.

방치된 채 누워있는 시신을 뒤로 하고 그들의 입술이 젖은 소리를 내며 달라붙었다. 침략의 의지는 양편 모두에 고스란히 깃들어있었다. 둘 중 누구도 침략당하고 싶지 않았고, 주도권을 넘겨주고 싶지도 않았다. 호흡은 거칠게 섞였다. 여자의 혀가 강하게 점막을 짓누르며 그를 범할 때면, 그의 혀는 능숙하게 농탕질을 치면서 여자의 입안을 더럽혔다. 입맞춤은 길어질수록 점점 그 모양이 거리의 눈 녹는 것과 같았다. 찰나에만 순전히 희었다가, 곧 흙발에 짓이기고 채여 지저분했다. 질척였다. 희고 더러운 자리를 조금도 분간할 수가 없었다.
이교도가 신을 섬김이 이러할까.


신앙을 모르는 여자가 그렇게 의문하며 물러나려는 때였다. 타인의 입안을 덥혔다가 아쉽게 문지르며 빠져나가려는 순간. “아!” 화끈하고 아릿한 통증이 들이닥쳤다. 혀를 깨문 통증은 금세 뿌리까지 번졌다. 나카에의 눈꼬리가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물었어? 네가 개야?’ 그녀가 눈빛으로 추궁했다. “물고 있어야 하잖아.” 티모시가 능수능란하게 답했다. “그래야 두려움도 잊고 죽음을 견디지.” 그녀가 무언가 중얼거렸는데 (‘개새끼’라고 하기엔 발음이 터무니없이 어설펐다) 짜증스럽게 뱉는 욕인지 아니면 평상시 하는 대로 단순한 부름인지 몰랐다. 남자는 알아들었으면서 뭐라고 했는지 되물었고, 그녀는 자리를 정리하는 동안 그를 오롯이 무시했다. 티모시는 그녀가 또 우스워졌고, 그가 남긴 통증은 그래서 물고 죽을 만큼 뜨거운지 묻고 싶었다. 그러나 저녁을 거른 마당에 배가 고팠고, 눈발을 헤치며 길을 뚫고 가는 건 그것만으로 충분히 진 빠지는 일이었기 때문에 길게 투닥거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만 참기로 했다. <完>